무한궤도 (1989)

 

LP로 샀다. 당시 주로 테이프를 사서 음악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투자였다 아니할 수 없다. 88년이던가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무한궤도의 모습을 보고 '멤버 전체가 얼굴도 다 잘생겼는데 명문대에 다니면서 음악까지 하다니... 옴마야 캡 멋져라' 대충 이런 식으로 현혹되었던 탓이었다. 당시의 무한궤도는 나에게 그저 '명문대 출신'이 강조된 잘생기고, 세련된 형들이 하는 그룹 사운드 정도의 의미였다.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도 그들의 음악을 진지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의 학벌이나 세련된 외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후에 신해철은 그런 당시의 분위기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회고하였지만 겉으로는 가요 프로도 나가고, 라디오 DJ도 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이틀 곡이었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처음 들었을 때 살짝 유치한 멜로디와 고딩적인 감수성 때문에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 생각난다. 정석원이 작사한 한 곡을 제외하고 전곡을 신해철이 작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작곡은 멤버들이 골고루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석원이 작곡한 '거리에 서면'과 이름이 기억 나는 키보디스트가 작곡한 '여름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었다. 밴드의 연주는 딱 고만고만한 아마추어 대학생 밴드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기타를 맡았던 신해철은 훗날 라디오에서 본인도 듣고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못 치는 기타의 정석을 보여준다. -_-; 특히 이 앨범 후반의 연주곡에서 김태원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그 비교 효과는 극대화된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괜찮은 작곡의 가요곡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꽤 즐겁게 앨범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신해철이 미스코리아 장윤정과 함께  '하나 둘 우리는 하이틴' 이라는 유치뽕빨한 이름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형이 그 방송을 듣고 있는 나를 보고 방송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차마 '하나 둘 셋 우리는 하이틴'이라는 유치한 이름을 밝힐 수가 없어서 그냥 라디오라고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_-;  훗날 신해철이 마초의 본성을 드러내면서 그가 만든 러브송들과 서서히 멀어지지만, 무한궤도에서 만든 러브송만큼은 지금도 그 여린 감수성과 예쁜 표현들 때문에  제법 좋아하고 있다. 

 

좋아했던 곡은 여름 이야기, 비를 맞은 천사처럼, 조금 가까이, 슬퍼하는 모든 이를 위해.

 


신해철 1집 (1990)


무한궤도 활동 중 신해철의 대마초 파동으로 팀이 해체되는 등 와신상담을 겪은 후 만든 솔로 데뷔작. 역시나 이번에도 LP로 샀다. LP의 커버 사진을 보면 왕자님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는 신해철 사진 위에 유화로 덧칠을 해놔서 유독 콧날이 오똑해 보이는데, 그 사진을 보면서 이번에도 역시나 우와 역시 잘생겼군.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다. -_-; 꾸준히 음반을 질러주기는 했지만 당시의 신해철은 나에게 있어서 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긴 가수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던 듯하다.

 

과거 '아기천사'란 팀으로 강변 가요제에 진출했을 때 만들었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는 곡을 타이틀로 내세운다. 해서 이 곡은 신해철의 모든 앨범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부 작곡가가 만든 타이틀곡으로 남아 있다. (훗날 발표한 재즈 앨범 제외) 가사는 애틋한 것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 멜로디가 너무 유치한 듯하여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한국 최초의 랩 히트송으로 알려져 있는 '안녕'이 마음에 들었다. 당시에 고만고만한 열창 발라드로 점철되어 있던 한국 가요계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탓이 컸을 것이다. 당시 텔레비전 음악 프로에 나와 '안녕'의 전주에 맞추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_-; 노래를 부르던 신해철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앨범 자체는 평이한 수준으로 고만고만한 발라드와 댄스가 적절히 안배되어 있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 웅장한 신디사이저와 합창단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떠나 보내며'를 특히 좋아했다. 곡들 사이에 편차가 너무 심해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건 좀 버겁고, 그냥 좋아하는 곡만 추려서 듣기에 적당했던 앨범이었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대중가수 신해철은 사라지고 본격적인 뮤지션 신해철이 등장하게 된다. 데뷔 초기 그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음악씬과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결국 생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좋아했던 곡은 떠나보내며, 너무 어려워, 안녕, 아직도 날 원하나요.

 


Myself (1991)


나는 뮤지션이자 예술가이다. 나는 그런 위대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에게 그에 걸맞은 예의를 갖춰라.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원래부터 많지 않았던 사랑 노래의 비중이 더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에 자아성찰과 사회의식을 채워 넣었다. 음악적으로는 1집에서 맛만 보여줬던 미디 음악을 전면에 내세워서 한국 미디 음악의 1세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해서 앨범의 80프로 이상을 홀로 해냈는데 이를 두고 당시에 프로그램빨이냐 실제 연주력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들어보면 악기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좀 유치한 감이 없지 않은데 이는 신해철의 감각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당시 미디의 음원 자체가 유치뽕빨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가수로서는 -아마도- 처음으로 앨범 속지에 평론가의 소갯글이 실려 있는데 이는 훗날 정석원이 015B 앨범 Big 5에서 신해철을 비난하는 글을 싣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석원이 썼던 것처럼 스스로를 우상화하기 위해 평론가의 찬양글을 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음악 자체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는 대중에게 음악 좀 주의 깊게 들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나 싶다.

 

먼저 테이프로 샀다가 나중에 시디로 한 번 더 구매하였다. 당시 마이마이로 이 앨범을 들으며 학원 복도를 걷다가 '나에게 쓰는 편지'의 랩 부분을 듣고 정말 백만 볼트의 전류에 감전된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노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정작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불안과 불만들을 모두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어떤 결심을 하게 된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분명하게 말해서 그날 장소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기 전의 나와 그 노래를 듣고 후의 나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다른 사람이었다. 음악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실제로 체험케 해준 노래이며, 내가 신해철이 발표한 앨범을 부득불 전부 구입하게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와 신해철의 음악 사이의 싱크로율은 백프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외에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그대에게'를 리메이크해서 다시 실었는데 중간 기타 솔로 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면에서 인생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앨범이다.

 

해서 이 앨범에서는 특별히 어느 곡을 좋아했다 싫어했다 고르는 것이 적절치 않은 듯하다.

 


변진섭 & 신해철 (1991)


뮤지션 본인들의 의지로 발매된 앨범은 아니고, 단순히 신해철과 변진섭 양 기획사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발표된 일종의 편집앨범이다. 변진섭의 경우 누가 들어도 그냥 이전 앨범에서 남는 곡들을 주워다가 발표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에 반해 신해철의 경우는 신중현 작곡의 '커피 한잔'의 리메이크곡과 '재즈 까페'와 '안녕'의 리믹스 버전을 수록하여서 나름 팬들에게 알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캡틴 퓨쳐 송재준이 리믹스한 '안녕'의 경우 당시 인기 캡이었던 머라이어 캐리의 'Someday'의 전주 부분을 매쉬 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이를 속이고 알바를 했던 숙대 근처 한 까페에서 이 앨범을 틀어놓으면 남자 손님중에 꼭 누군가 찾아와서 신해철의 어느 앨범에 실린 노래인지 묻곤 했다. 그정도로 당시 신해철은 또래 청년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 짱이었다.

 

좋아했던 곡은 커피 한잔, 안녕.

 


91 Myself Tour (1991)

 

신해철 솔로 앨범의 주요곡들을 수록한 라이브 앨범이다. 신해철 솔로 활동 중 마지막으로 발표한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에서는 훗날 넥스트로 같이 활동하게 되는 이동규, 정기송 그리고 훗날 이동규의 후임으로 들어오게 되는 김영석까지 모두 참여하고 있다. 그런 걸로 봐서 넥스트의 모태가 되는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미디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전 앨범과 달리 이 앨범은 풀 밴드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해서 곡들은 전반적으로 보다 락에 가까운 형태로 재편곡 되었으며 이는 라이브 특유의 생동감과 더해져서 곡들을 보다 파워풀하게 만들어 놓았다. 훗날 신해철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앨범은 후반 수정을 너무 많이 해서 라이브 앨범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막귀인 건 마찬가지라서 어디를 고쳤는지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다. -_-; 

 

The Greatest Love Of All과 Rainbow Eyes의 커버곡이 실려 있다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 당시 고음이 안되던 가수로 정평이 나 있던 신해철이 '길 위에서'를 부르며 쏟아내는 절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_-;

 

좋아했던 노래는 재즈 카페, Rainbow Eyes, 길 위에서.

 


Home (1992)

 

밴드에서 솔로로 그리고 다시 밴드로 돌아온 앨범. 당시에는 테이프나 LP에 비해 CD가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늦게 출시가 되었기 때문에 CD로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신보가 나올 때마다 초조한 마음으로 음악사 앞을 서성거려야 했다. 나 역시 친구가 LP로 먼저 산 넥스트 홈 앨범을 구경하며 아 대체 CD는 언제 나오는거야 기약없는 CD 출시일에 한없이 야속한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_-;

 

솔로 활동 당시 '밤의 디스크 쇼'라는 라디오 방송의 DJ를 하고 있던 신해철은 음악에 충실하기 위해 당시 인기 절정이던 DJ자리를 하차하고 넥스트를 결성한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음악만 하겠다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놔서 '대체 얼마나 어려운 음악으로 팬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려고 저러나.' 은근히 겁을 집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_-; 하지만 막상 앨범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대중적인 곡도 꽤 많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홈 앨범 당시의 넥스트는 지금과 같은 하드 락 풀 밴드의 형태가 아니라, 당시에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하이브리드 락'을 하는 절충형 밴드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일단 소울, 펑키, 클럽 하우스, 월드 뮤직, 포크, 락 등 한 앨범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고, 대중 매체를 고려하고 만든 곡과 자기들 하고 싶은 데로 밀어붙인 곡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또한 자기들 뜻대로 밀어붙인 곡이라고 특별히 난해하다던가, 전위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신해철의 마음은 한없이 하드했지만 그 결과물은 철저히 대중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적정한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넥스트 앨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을 꼽으라면 이 앨범을 꼽고 싶다. 이런 하이브리드적인, 장르의 이종교배야 말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장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서 넥스트가 이후에도 계속 이런 노선의 음악을 견지하였다면 훨씬 간지 작살나는 음악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리스너가 뮤지션의 방향을 강제할 수는 없는 법이고, 신해철이 또 누가 옆에서 뭐 하란다고 할 사람도 아니기에 -_-; 그냥 앨범 사면 일단 닥치고 감상부터 하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

 

당시 기타를 담당하던 정기송은 화려한 솔로와 매고 있던 기타를 어깨끈을 이용해 360도 돌려대는 퍼포먼스로 명성이 높았다. 팀에서 드럼을 담당하던 이동규는 잘생긴 얼굴과 남성다운 보컬로 솔로 앨범까지 내면서 차세대 넥스트의 보컬리스트로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결국 더 빙 앨범에서 베이스로 전향하게 된다.

 

잠시 언급했던 라디오 디제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MBC FM의 프로그램 이름은 밤의 디스크쇼 줄여서 '밤디' 였고, 그가 책의 제목은 '사랑의 날개는 너에게' 였으며, 그의 별명은 '꼬마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은 통칭 '밤디가족'이라고 불리었다. 훗날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이 고스트스테이션 줄여서 '고스'가 되고, '쾌변독설'이란 제목의 인터뷰집을 내며 또 '마왕'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고스식구'들을 거느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_-;

 

다만 그래서 누군가가 신해철이 그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외형적으로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20대 초반의 청년 신해철과 현재 마흔 중반의 아저씨 신해철은 -_-;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몇년 전 우연히 신해철이 20대 초중반에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으며 확신한 일인데, 그는 20대 초중반 이미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과격하고, 급진적이며, 전투적인 기질과 인식을 확립하고 있었다. 다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좋아했던 노래는 인형의 기사 Part II, Turn Off The TV, 외로움의 거리, 아버지와 나 Part I, 영원히.

 

태그 : 신해철
  1. 날달걀 2010/06/19 00:30 답글수정삭제

    천상의 목소리 레나 박 님의 흥망성쇠는 안해줄랍니까?

    천국의 천사가 존재한다면 우리 박정현님과 싱크로율 99.9퍼센트가 확실하지 말입니다.

    • 사슴눈 2010/06/19 02:02 수정삭제

      박여신님의 경우 제가 전 앨범을 다 들어본 게 아니라서 약간 애로사항이 있긴 합니다만, 날달걀님께서 그리 원하시니 다음에 기회가 닿을 때 함 도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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