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1집 (1990)


테이프로 샀다. 당시 무한궤도도 좋아했고, 신해철도 좋아하던 나로서는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꽤 열심히는 들었던 것 같은데 딱히 마음에 남는 노래는 없었던 앨범. 지금 공일오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텅 빈 거리에서'를 떠올리지만 사실 1집 활동 당시에 크게 히트한 노래는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 성가대 삘이 가득했던 합창곡 '세상은 하나의 작은 의미'가 심야 라디오를 중심으로 리퀘스트가 쏠쏠하게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정석원은 분명 천재였지만 이 앨범을 통해 그 비범함을 드러내기에는 음악적 커리어가 너무 미천한 상태였다. 풋풋함과 어설픔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던 앨범.

 

좋아했던 곡은 난 그대만을.


Second Episode (1991)

 

역시나 테이프로 샀다. 당대의 최신 유행 음악을 흡수하여 최대한 비슷한 양식으로 모사해내는 정석원 특유의 음악 행보가 시작된 첫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015b의 앨범은 언제나 한 두곡 정도 표절 파문에 휩싸이는 것이 단골 레파토리가 된다. 이 앨범에서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미국 듀오 Milli Vanilli(후에 립싱크 파문으로 유명했던)의 노래를 표절했네 안했네를 가지고 말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요를 하는 밴드치고는 파격적으로 랩송이 두곡이나 되는데 -'4210301'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랩 불모지였던 한국 가요계에서 랩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긴 했으나 솔직히 지금 들어보면 정말 두 곡 다 랩은 깜짝 놀랄 정도로 못한다. -_-; 다만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당시 20대 초반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_-;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까페에 앉아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다일텐데'같이 직설적인 가사는 당시의 내 귀에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역시나 좋아하는 곡만 골라 들었던 앨범으로 기억된다.

 

좋아했던 곡은 친구와 연인.

 


The Third Wave (1992)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일오비 앨범.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고, 앨범 완성도도 매우 높았다. 처음 씨디로 산 공일오비 앨범이기도 하다. 역시나 이 앨범에서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미국 뮤지션 Right Said Fred의 'I'm Too Sexy'라는 곡의 표절이라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정석원은 미국의 최신 유행 장르 중 하나일 뿐이고,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노래는 미국 가면 널렸다고 항변했으나, '아주 오래된 연인들'과 'I'm Too Sexy'가 스타일과 진행면에서 아주 유사하다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론은 그런 정석원의 최신 미국 유행 음악의 모사형 음악 창작품에 대한 각 개인의 호불호 문제였다. 당시의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석원이 그런 음악 행보를 답습하고 있는 데는 부정적이다. 클럽 하우스, 발라드, 레게, 아카펠라, 퓨전 재즈, 등 이전 앨범과 달리 최대한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댔고 이는 후에 한국 대중가요에 한 전형이 되어버린 '백화점식 장르 나열 앨범'의 효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당시 대학 초년생이었던 이 블로그의 공동운영자인 날달걀님께서 '너를 기다리며'를 들으며 완전 자기 이야기라고 징징거리는 걸 보며 '아 이런 개찌질이와 친구라니' 많이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_-; 그것과는 별개로 015B는 당대에 신세대라고 불리우던 20대 초중반의 평범한 한국 젊은이들의 진실한 정서적 대변자였다.

 

좋아했던 노래는 5월 12일, Santa Fe

 


戀人 O.S.T. (1993)

 

당시 KBS 주말 드라마 '戀人'의 O.S.T.를 정석원이 맡아 앨범까지 냈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당시 청춘스타였던 신애라와 김주승 그리고 이휘향과 이효정이 나온 신세대풍 트랜디 드라마였다. 장호일이 부른 앨범 주제가 '연인'은 늘 드라마 마지막 아니면 예고편에 나왔는데 그 껄끄러운 목소리로 '누가 그런 말을 해~~~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긁어주면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있다. 작사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작가가 직접 썼던 걸로 기억한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O.S.T.는 정석원이 담당했는데 정작 드라마에 자주 깔린 BGM은 김현철이 영화 '그대 안의 블루' O.S.T.에 수록한 연주곡이었다. -_-; 내가 정석원이었으면 그 드라마 피디의 목을 물어버렸을 것이다. -_-;

 

솔직히 앨범을 산 게 아니라 당시 015B의 팬이었던 날달걀님 집에 놀러갔다가 한 번 들은 것이 전부라서 딱히 좋아하는 곡을 고르기 좀 껄끄러운데;;; 그래도 한 곡 뽑자면 정석원의 피아노 연주가 인상적인 연주곡 아침.

 


The Fourth Movement (1993)

 

미국의 최신 음악과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던 전작을 뒤로 하고 본격 '복고풍 음악'을 선보인 앨범이다. 물론 복고풍이라고 해서 한국의 예전 가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은 아니고, 60에서 80년대 사이 서양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를 015B가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는 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했으나 개인적으로 딱히 마음에 드는 앨범은 아니다. '요즘 애들 버릇없어'와 '제사부(第四府)', '교통 코리아'등 공일오비 앨범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노래가 많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듣다가 뭔가 마음이 깨름칙해서 -_-; 015B의 열혈팬이었던 날달걀님께 그냥 선물로 줬고 -_-; 날달걀님은 그걸 역시나 자기가 아는 누나에게 선물로 줬다. -_-; 해서 앨범은 현재 날달걀님의 아는 누나이면서 나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어떤 여인네가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좋아했던 곡은 교통 코리아.

 


Big 5 (1994)

 

이 앨범은 사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당시 공일오비의 행보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왜 마음에 안들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_-; 다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슬픈 인연'과 '단발머리' 과거 한국 대중음악의 명곡을 리메이크하여 타이틀로 내세웠다. 십몇 년이 지나 리메이크 앨범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음반 시장에 쏟아진 것을 생각하면, 당시 정석원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앞서 가던 음악인이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리메이크에 도전한 '단발머리'나 '슬픈 인연' 워낙에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이라 살짝 쫄았을 법도 한데, 과감한 발상과 정교한 작업을 통해 원곡의 아우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냈다. 다른 곡들은 잘 모르겠고, 복고 디스코 넘버였던 '결혼'이라는 곡도 상당히 좋아하였다. '어차피 적당한 나이에 조건 맞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면서 무슨 사랑타령이냐'는 정석원 특유의 독설 또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시간'이라는 곡이 Lenny Kravitz의 'It Ain't Over 'Til It's Over'의 표절이라는 논란이 벌어질 것을 염려한 정석원이 앨범 속지에다가 이러저러해서 표절이 아니다 라고 써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석원에게 표절이란 대체 무엇이고 또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아참 이 앨범 속지에서 정석원이 노골적으로 신해철을 까는;; 글을 실어서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다. 근데 앨범도 안 샀으면서 어쩜 이리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 -_-;

 

좋아했던 곡은 단발머리, 슬픈 인연, 결혼.

 


The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 (1996)

 

공식적으로 공일오비의 마지막 앨범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신세대, 밝음, 세련됨, 쿨함 등 이전까지 견지하던 음악적, 정서적 태도에서 대변신을 시도하여 Nine Inch Nails 또는Fear Factory 같은 인디스트리얼 락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였다. 해서 앨범은 시종일관 세기말적 우울함과 각종 노이즈로 점철되어 있다. 또 다른 의미로 공일오비의 최대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좋아하였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정석원에게 '간택'된 유희열이 이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메이저 시장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새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한 공일오비와 달리 아직 대영 에이브이와 계약이 남아있던 윤종신은 '21세기 모노리스'란 곡에서 신경필인가 하는 이름으로 몰래 -_-; 노래를 한곡 부른다. -정말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 -_-;- 앨범 수록곡 중 '구멍가게 소녀'란 제목이 사실은 성매매 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라는 것을 사실은 몇 년 전에야 불현듯 깨달았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순수하고 깨끗한 청년이었다. -_-; 공일오비 앨범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뮤지션인 하모니카 연주가 Lee Oskar가 참여하여 조규찬과 함께 천상의 소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신세대라 불리던 '사회 문화적 뉴프론티어'들이 IMF 도래와 함께 순식간에 소멸될 것임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공일오비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소임은 여기까지라는 듯 한순간에 대한민국 음악씬을 떠나버린다. 

 

좋아했던 곡은 독재자, 성모의 눈물 For Desperado, 마르스의 후예.

 


이가희 1집 (2001)

 

공일오비 6집을 끝으로 캐나다에서 잠행 중이던 정석원을 장호일이 설득하여 다시 대중음악판으로 끌어온 후 처음 만든 앨범이다. 표면상으로는 이가희라는 어린 여자 가수의 솔로 데뷔 앨범이지만, 홍보도 공일오비를 전면적으로 내세웠고, 내용면에서도 그냥 정석원 솔로 프로젝트라고 보는 편이 맞을 정도로 정석원 개인이 앨범 전체를 기획하고 통제한 앨범이다. 전체적으로 발라드에 일렉트로니카적인 색채가 가미된 앨범이며, 곡의 세련됨과 복잡함은 역대 공일오비 앨범 중 단연 최고다. 다만 노래를 담당한 이가희양은 보이스 칼라, 가창력, 곡 해석 능력, 음악적 센스 그 무엇 하나 가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였기에 처음 앨범을 듣는 내내 매우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앨범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이가희라는 가수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었지만, 가수를 업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평범한 소녀를 데려다가 무리하게 자신의 음악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앨범을 제작한 정석원의 오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이가희는 1집을 마지막으로 가요계에서 사라졌으며, 정석원은 박정현 4집으로 화려하게 재기하기 전까지 우울한 잠행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이기는 하지만 그런저런 이유로 마냥 즐겁게 감상하기 힘든, 좀 복잡다단한 마음이 드는 앨범이다. 아 그리고 이 앨범은 가요 발라드 앨범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가사로 쓰여진 앨범이기도 하다. 특히 동침을 원하는 남자 친구를 향해 '그것만은 안돼요'라고 애원하는 한 가녀린 소녀의 순정을 그린 '그것만은 안돼요'는 그 해 내가 가장 자주 흥얼거린 노래 가사였다. -_-;

 

좋아했던 곡은 밀, 오빠는 황보래용, 그것만은 안돼요, 머리카락 줘

 

 

Lucky 7 (2006)

 

정확하게 몇 년 만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진장 오랜 공백 끝에 다시 부활을 알린 앨범이다. 정석원이 일렉트로니카, 트랜디한 알앤비 그리고 힙합으로 이 앨범을 가득 채웠을 때 사람들은 매우 당황한 듯 보였으나 나는 솔직히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정석원에게 가장 좋은 음악이란 언제나 당대에 미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대중음악이었고, 그의 음악 코어는 그 음악을 얼마나 세련되고 똑같이 모사해내는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언제나처럼 당대의 최신 미국 인기 음악을 텍스트로 삼았을 뿐이고 그것이 공교롭게 트랜디한 알앤비와 힙합 음악이었을 뿐이다. 다만 앨범 속 흑인 음악을 듣고 받은 감상은 '과학자가 만들어낸 흑인 음악'같다는 것이었다. 태생적으로 몸의 음악일 수밖에 없는 흑인 음악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앨범에서 나오는 흑인 음악은 모두 정교하게 계산되고, 빈 틈 없이 짜여진 밀도 높은 기계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말이다. 역시나 이 앨범에서도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이 Kanye West가 즐겨 사용하는 칩멍크의 방법론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난이 있었다. 어떻게든 한국 대중음악과 서양 대중음악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90년대에는 그런 식의 시도가 어느 정도 당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실시간으로 미국의 가장 트랜디한 음악을 접할 수 있고 또 그런 음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씬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2000년대 후반의 한국에서 그런 '90년대적 시도'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 싶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이것저것 재미있는 음악도 많았고, 나름대로 만족하며 들은 앨범이다.

 

좋아했던 곡은 처음만 힘들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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