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1991)
친구한테 테이프를 빌려서 들었나 그랬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잘 나가는
작곡가인데 알고 보니 잘생기고 목소리까지 좋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앨범을
전부 들어보니 확실히 기존 가요와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아마도 미디음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1세대 음악인이라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홍종호라던지 그전에 이미 미디음악을 대중음악에
도입한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 또 너무 길어지니까
일단 패스. 이때는 아직 박창학과의 파트너십을 시작하기 전이라 박주연이라던지 또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다른 여성 작사가와 주로 작업을 했다. -라고 써놓고
혹시나 해서 윤상 홈페이지를 가봤는데 디렉터가 박창학이고, 이름이 생각 안 난다는
여성 작사가는 지예, 그리고 이미 박창학도 작사에 참여하고 있네;;- '행복을 기다리며'이
시작될 때 들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
앨범에 좋은 인상을 받아 2집부터 열심히 사모았지만 어쨌건 이 앨범은 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상한 데서 짠돌이 기질을 발휘하곤 한다; 하굣길에
친구 몇하고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시간의 얼굴'을 부르자 문득 한
친구가 '오 좋은 노래구나.' 감탄한 기억이 난다. 물론 노래가 좋은게 아니라
내가 잘 부르는 거라고 으쓱대줬다.
좋아했던 곡은
행복을 기다리며, 알 수 없는 일, 시간의 얼굴
2집 Part 1 (1992)
처음 씨디로 산 윤상 앨범. 앨범 케이스를 종이 상자처럼 만들었는데
뚜껑을 열면 씨디와 함께 두꺼운 종이로 제작된 윤상의 사진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다. 얼굴에 자신이 있으니까 별짓을 다하는구나 라고 당시에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질투가 나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어린 대인배에
가까웠다. -_-; 앨범을 처음 듣고 소리가 너무 깨끗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동년배의 뮤지션들이 앨범을 거듭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면 윤상은
이미 시작부터 자기 음악 세계를 완성하여 등장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늘
욕하는 재미가 덜 했던 것 같다. -_-; 이 앨범에서도 아직 박창학과의
본격적인 파트너십은 시작되지 않았다. 윤상 앨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앨범으로 기억하며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했던 곡은 가려진 시간 사이로, 넌 쉽게 말했지만, 나의 꿈속에서
2집 Part 2 (1993)
윤상이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앨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서 앨범에는 연주곡이 다수 포진해 있으며 페이퍼 모드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밴드를 결성하고 앨범을 내자마자 윤상이 군대에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_-; 페이퍼 모드는 변변한 활동 한 번 못해보고 해산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_-; 당시에 숙대 근처 이방인이라는 까페에서 나이를 속이고 써빙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_-; 허구헌날 인기가요 모음집만 틀어대는 사장의 음악 취향에
짜증이 나서 -_-; 이 앨범에서 '소년'과 '고백' 그리고 다른 좋아하는 곡들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나 혼자 일하는 시간에는 그걸 틀었던 기억이 있다. 내
앞 타임에 알바를 하던 누나가 너무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_-; '고백'은
내가 지금껏 살면서 들었던 모든 곡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완벽한 구성과 편곡이라고
감탄을 했던 곡으로 지금 들어도 어떻게 이렇게 한 음도 버릴 음이
없이 꽉 짜여진 편곡을 했을까 놀라운 마음을 갖게 한다.
좋아했던 곡은 새벽, 소년, 고백.
Renacimiento (1996)
군 제대 후 처음 발표한 앨범. 자신의 히트곡을 외국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일종의 프로젝트 앨범이다. 윤상의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앨범이 아닌가 싶다. 당시에 윤상이 라디오에서 사실은 프랑스에서 인기 높았던 엘자가 노래를 부를 뻔했는데 계약 문제가 복잡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은 누가 못해' 라고 살짝 비웃어 줬던 기억이 난다. -_-; '배반'이라는 곡을 통해 왜 윤상 & 박창학이어야 했나를 세상에 증명한 앨범이 아닌가 싶다. 리메이크된 곡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좋다 나쁘다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으나 윤상과 박주연의 듀엣곡을 알앤비로 리메이크한 Joined by the heart 는 마음에 들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앨범은 직접 구입하지 않았고, 훗날 어디 사무실에 며칠간 일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진열대에 꽂혀 있는 음반을 몰래 가방에 넣어왔다. 줄여서 말하면 훔쳤다고나 할까 -_-; 변명을 하자면 그 사무실에서도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그냥 홍보용으로 돌아다니는 앨범을 전시용으로 진열대에 꽂아둔 것에 불과했다. 이 좋은 앨범이 그냥 전시용으로 수백장의 씨디와 함께 묻혀만 있다라는 사실이 당시 열혈 청년이었던 나로서는 견딜 없는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훔쳤다. -_-; 덕분에 내가 소장한 앨범 중 유일하게 뮤지션의 자필 싸인이 들어있는 앨범이다. -_-;
좋아했던 노래는 배반, Joined by the heart.
Nodance (1996)
같은 미디 음악 1세대인 신해철과 함께 만든 전자 음악 프로젝트 앨범이다. 앨범에서 신해철이 부르는 곡이 더 많아서 윤상은 들러리만 섰다는 말들이 있었으나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윤상의 곡 지분이 많으면 더 많았지 결코 신해철보다 적지는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했다고 하였지만 앨범을 들어보면 두 사람의 화학적 결합은 솔직히 잘 안느껴지고 -_-; 그냥 각자의 작업물에 훈수질 정도 한 것 같은 기계적 결합만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전자 음악 프로젝트라고 하지만 곡들은 장르적으로 오히려 가요의 작법에 충실하며, 전자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그저 자기들이 듣고 자란 뉴웨이브, 신스 팝, 테크노 등의 전자 음악을 자기들식으로 한 번 정도 복기해본다는 뉘앙스가 강한 앨범이다.
좋아했던 노래는 질주, 월광, 달리기, 기도
Insensible (1998)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승환의 드림 팩토리에서 나온 앨범. 개인적으로 윤상 앨범 중에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당시에 여자친구하고 헤어질랑 말랑 하는 비극의 기로에 서 있었던 관계로 정말 첫 곡부터 마지막 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 흑흑흑 흐느끼면서 들었다. -_-; 음악적으로 할 말도 많고 정말 완성도 높은 앨범이지만, 그전에 나에게는 담배 연기 자욱한 방, 흐르는 음악 소리, 그리고 질질 짜고 자빠졌는 나 -_-; 이런 풍경들이 먼저 떠오르는 앨범이다. 타이틀 곡 '마지막 거짓말'은 그냥 들을 때는 너무 멋지고 좋은데, 노래방에서 부르면 분위기 깬다고 야유를 받는 비운의 곡이기도 하다. -_-;
어찌되었던 그런 개인적인 인연으로 인해 이 앨범의 모든 곡을 다 좋아한다.



